밀양 손씨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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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경상남도 밀양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1]
시조는 문효공 손순으로 신라시대 사람이다. 기록에 따르면 흥덕왕 시절 노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어린 자식이 자꾸 노모의 음식을 뺏어먹는 등 말썽을 부리자 효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아이를 뒷산에 묻어서 버리려고 아이를 업고 올라가 땅을 팠더니 옥으로 만든 석종이 발견되어 "이는 아이의 복이다"라는 부인의 만류로 도로 산을 내려왔다. 그 석종의 소리가 밝아 종을 치면 신라 왕궁까지 소리가 들려 흥덕왕이 이 소리를 듣고 신하들에게 사연을 알아보라 명하여 사연을 알게 된 후 집 한채와 쌀 50석을 내리고 높은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손순의 손자 손익감(孫翼減)이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밀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중흥조(中興祖) 손긍훈(孫兢訓)이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보국숭록대부(輔國崇錄大夫)에 오르고 광리군(廣理君)에 봉해져서 가세(家勢)를 크게 일으켰다.
밀양 손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8명, 무과 급제자 125명을 배출하였다.
현재 손씨 중에서는 약 7~80%가 밀양 손씨로 가장 숫자가 많다.
밀양시에 손씨 고택이 있으며 종친회는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하고 있다.
시조는 문효공 손순으로 신라시대 사람이다. 기록에 따르면 흥덕왕 시절 노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어린 자식이 자꾸 노모의 음식을 뺏어먹는 등 말썽을 부리자 효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아이를 뒷산에 묻어서 버리려고 아이를 업고 올라가 땅을 팠더니 옥으로 만든 석종이 발견되어 "이는 아이의 복이다"라는 부인의 만류로 도로 산을 내려왔다. 그 석종의 소리가 밝아 종을 치면 신라 왕궁까지 소리가 들려 흥덕왕이 이 소리를 듣고 신하들에게 사연을 알아보라 명하여 사연을 알게 된 후 집 한채와 쌀 50석을 내리고 높은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손순의 손자 손익감(孫翼減)이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밀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중흥조(中興祖) 손긍훈(孫兢訓)이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보국숭록대부(輔國崇錄大夫)에 오르고 광리군(廣理君)에 봉해져서 가세(家勢)를 크게 일으켰다.
밀양 손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8명, 무과 급제자 125명을 배출하였다.
현재 손씨 중에서는 약 7~80%가 밀양 손씨로 가장 숫자가 많다.
밀양시에 손씨 고택이 있으며 종친회는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하고 있다.
2. 유명인물 [편집]
3. 항렬 [편집]
- 41세: 0모, 0식
- 42세: 병,영
- 43세: 0기, 0곤
- 44세: 용0, 찬0
- 45세: 0한, 영0
- 46세: 동0(東), 병0(秉)
- 47세: 0열(烈),0섭(燮)
- 48세: 재0(在)
[1] 밀양 손씨 종친회에서는 밀양 손씨가 모든 손씨(일직 손씨)의 대종(大宗)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경주 손씨가 옛날에 대종이었다는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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